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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신 4등급 의사입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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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과 의대정원 원점 재논의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 체결을 위해 4일 서울 충무로 남산스퀘어빌딩에 위치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으로 향하던 중 전공의들의 반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과 의대정원 원점 재논의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 체결을 위해 4일 서울 충무로 남산스퀘어빌딩에 위치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으로 향하던 중 전공의들의 반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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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형님, 의료 파업에 대해서 의사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첫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의사 아니고 치과의사인데…."

그렇게 말문을 떼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주었다.

일반인들은 치과의사를 의사로 생각한다. 물론,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국가에서 발급해준 면허증을 가지고 진료라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의사가 맞다.

하지만 주변의 의사들이 바라보는 치과의사는 자신들과 부류가 약간 다르다. 덴티스트. 기술자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약간은 조심스럽다. 의사도 아닌 것이 어딜 감히.

그런데도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의료정책연구소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삭제되었다는 화제의 글 내용 때문이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을 비판하며 '전교 1등 의사'와 '성적 모자란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나는 단단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어이없고 황당할 뿐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나를 의사로 인정해준다면, 나는 의사협회에서 말하는 돌팔이 의사다. 왜냐면 전교 1등은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고, 하물며 그런 친구조차 둔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신 4등급짜리 의사다. 입시제도가 수능으로 바뀌면서 15등급 구간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그저 상위 1/3에 가까스로 턱걸이한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치과대학에 합격했냐고? 이 또한 수능 때문이다. 나는 수능 1세대다.

좋은 의사의 조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에 공부에만 매진하지 못했다. 책도 읽고, 야간 자율학습 빼먹고 영화도 보러 다녔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설프게 고민하느라 의학 계열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때 입시제도가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다는 결정이 났다.

수능 모의고사를 치렀는데, 성적이 놀라울 만큼 잘 나왔다. 모의고사를 치르면 내신 반 석차가 전교 석차로 바뀌어 나왔다. 선생님들은 처음에는 커닝을 의심하다가 계속 성적을 유지하자 희망 진로의 영역을 넓혔다. 전교 석차가 반 석차로 뒤바뀐 아이들은 내게 질투와 동경을 동시에 가졌다. 나는 더 열심히 소설책과 시집을 읽었다.

내 개인적인 역사는 이쯤 해두자. 그저 운이 좋았던 사람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지방에 있는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후 학과 성적이 좋을 리 없다. 남들보다 대학을 1년 더 다니고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해서 치과의사 면허증을 받아 쥐었다. 그것이 20년 전의 일이다.

 

 나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안 중 공공 의대 설립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안 중 공공 의대 설립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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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성적이 변변치 않은 나는,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추천하는 수능이라는 시험을 보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치과의사면허증을 받은 사람이다. 의사들의 필수 코스인 수련의 과정도 밟지 않았다. 공중보건의 시절, 섬에서 1년간 근무하기도 했다(공중보건의 근무지 선택도 시험을 보고 성적순으로 배치되는데, 나는 꼴찌에서 세 번째였다. 내 바로 뒤는 병원선을 탔고, 꼴찌는 배로 세 시간 걸리는 섬에 발령받았다).

다시 말해, 나는 공부를 썩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찌 보면 성적이 한참 모자란 사람이다. 다만 공부를 잘해야 최고의 의사가 된다는 주장은 수긍할 수 없다. 20년간 환자를 보면서 깨달은 점은, 최고의 의사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임상 실력이고, 두 번째는 인성이다.

임상 실력은 학교 성적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래도 열심히 공부하고 전문 지식이 많은 의사가 실력이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과서를 통째로 머릿속에 갈아 넣은 명문 의대 졸업생과 지방대 출신의 20년 경력 의사의 실력 차이는 굳이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진단을 포함한 임상 실력의 본질은 바로 경험이다. 의과대학 6년을 졸업하고도 4~5년간 수련 과정을 거치는 이유도 훌륭한 선배들의 경험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경험이 축적되어 지식과 결합하면서 최고의 의사가 길러진다. 순간적인 판단 능력과 타고난 손재주가 보태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단순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을 파먹던 열정과 노력이 최고의 의사로 직행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슬의생의 그들은, 수술을 미루고 파업에 동참했을까?

다음으로, 사실 최고의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성이다. 의사로서 지녀야 할 기본 소양인 공감 능력과 환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 물론, 인성이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교육제도의 개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성 교육이 진짜 의사를 만들어내는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의대에 진학하려는 이들 중에 어릴 적부터 슈바이처를 동경하고, 낭만닥터 김사부를 본보기로 삼아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주인공들이 예약된 수술을 미루고 파업 현장에 동참하기 위해 뛰쳐나갔을까?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의 의료 정책을 두고 평행선을 달리던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4일 오후 다시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최대집 회장과 박능후 장관은 '앞으로 의·정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하겠다'는 요지의 합의문을 작성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말부터 시작된 의사들의 무기한 파업 철회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일부 전공의들은 계속해서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안 중 공공 의대 설립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의술의 질은 교육하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 의술을 습득할 정도의 기본 학습능력을 지니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해야 한다.

학비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최고의 교수진들 밑에서 교육과 수련을 받게 한 뒤, 의무 복무 기간 동안 지방에서 진료하게 한다. 이에 필요한 재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누어서 분담한다. 지방자치단체로선 지역에 유능한 의료인력을 일정 기간 꾸준히 공급할 수 있으므로 손해 볼 일이 아니다.

지원자가 부족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수련의 기간과 의무 복무 기간 동안 충분한 급여를 지원하고,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개원 지원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남자의 경우, 군 복무 대체의 특혜도 제공할 수 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의사를 꿈꿀 수 없던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사다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전공의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사표를 내던졌다는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 모두는 전교 1등이었는가? 여러분 중에 의료의 수도권 편중화를 막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 후학을 양성할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결국, 피해자는 질이 떨어지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국민이 될 것이라는데, 당장 피해를 보는 국민은 누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가?

이 글을 본 내 환자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원장님,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하셨다면서요?"

난 이렇게 답하련다.

"네, 저랑 공부는 영 안 맞더라고요. 그냥 면허증 딸 정도만 노력했습니다. 인생을 좀 살아보니 공부 잘하는 사람이 항상 똑똑한 것은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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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5, 2020 at 09:2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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