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20대 국회에서는 총 2만 4081건의 법안이 발의됐고, 이 중 8819건이 처리되어 법안처리율은 36.6%에 그쳤다. 법안 3건 중 2건은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왜 이렇게 법 만들기가 어려운 걸까?
한 언론사에서 20대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을 분석하여 A~D까지 등급을 나눴다. 사회적인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법안이거나 민생에 영향이 매우 큰 법안은 'A등급'을, 문제 해결과 정책추진에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법안은 'B등급'을, 단순 조문 추가나 법체계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법안은 'C등급'을, 단순 용어변경 등 이른바 건수 늘리기 법안은 'D등급'을 주었다. 예를 들어 '환수할'을 '돌려받을'으로 용어를 순화하는 법안은 D등급이다.
등급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A등급 법안은 법안 구상은 둘째 치고 통과가 어렵다. 아니, 논의자체도 어렵다. A등급 법안은 본질적으로 첨예한 찬반논란을 부르며, 반대 목소리가 거세면 당연히 상임위를 통과하기 어렵다. 상임위도 하루 종일 논쟁만 벌이다 법안 1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바에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쟁점의 여지가 없는 법안 10건을 올리는 쪽을 택한다.
또한 법안 발의 건수와 통과율은 국회의원 평가에 중요한 지표다. 있는 고생 없는 고생해서 A등급 법안을 만들어봤자 통과는커녕 논의조차 안 된다면 의원실 입장에서도 차라리 C·D 등급 법안을 많이 만드는 편이 '효율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비서관 시절, '쟁점이 크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을 구상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은 마치 신기루를 포장해서 판매하는 일 같았다.
어느 날에도 신기루를 찾아 헤매던 중,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심뇌혈관질환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법률 제2조에서 '심뇌혈관질환'을 정의하는데, 고혈압도 있고 당뇨병도 있지만 이상지질혈증이 없었다. 복부 비만, 고혈압, 혈당장애, 이상지질혈증은 대사증후군으로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때문에 내과 의사 입장에서 이상지질혈증은 당뇨병, 고혈압과 마치 '세트'처럼 여겨지는 질환인 데도 말이다.
게다가 이상지질혈증은 20대의 18.9% 및 20세 이상 성인의 38.4%이 앓고 있는 질환이며(지질동맥경화학회, <2020 이상지질혈증 팩트시트(Dyslipidemia Fact Sheets)>), 고령화 및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유병률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반면 치료율 및 지속치료율이 떨어져 정책적 관심이 시급하다.
법률에 그깟 질환 하나 있고 없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법은 보건복지부에서 5년마다 수립하는 <심뇌혈관질환관리종합계획>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며, 종합계획은 이 법을 토대로 심뇌혈질환관리사업의 기본목표, 추진계획, 통계 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이상지질혈증이 심뇌혈관질환의 정의에 들어가는 것은 국가의 정책적 지원 의지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참고로 2016년 5월 발의된 제정안에는 이상지질혈증이 심뇌혈관질환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입법과정에서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고려하여 제외되었다.
즉각 심뇌혈관질환의 정의에 이상지질혈증이 포함되는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이 개정안은 위에 언급한 분류에 따르면 아마도 C등급에 불과할 것이다. 단순 조문 추가에 불과하니까. 실제로 제출된 법안의 원안이 통과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이 법안은 그대로 통과되었으며 논란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상지질혈증의 예방과 치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테니 내 멋대로 'A등급 같은 C등급 법'이 아닌가 자평해본다.
개인적으로 이런 틈새시장을 노려 좋은 법안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논란이 거셀수록 처리나 통과가 어려운 작금의 풍토는 앞으로도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낙타의 수가 점차 많아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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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3, 2020 at 06:0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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